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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선에 서다

espy진 2022. 10. 27. 10:31

31년의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에 왔다. 여주로.  나는 도시에 두고온 나를  못 잊고 3년을 매일 서울로 나갔다.반겨주는이도 갈곳도 없이 시골이 너무 싫어서 그렇게 적응 3년을 뒤로하고 여주댁이 된지 21년차 촌닭이 됐다. 1년은 집을 짓는 남편과 목수 아저씨의 식사 담당자로 매일 국수를 삶았다.비빔국수를 삶고 헐레벌떡 남들 퇴근 시간 쯤에도 아기를 업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그렇게 21년동안 어떻게든 구실을 만들어 서울로 향하던 나.집을 완성하고 둘째를 낳았지만 교회를 다니게 된것 말고는 달라진것 없이 4년 .시골 생활에 운전을 배우고 초등학교로 아이들 방과후 교사를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영어를 가르치고 다음엔 전공을 살려 합창을 가르치고 아버지 사업에 나의 알바자리가 생겨 나면서 나는 서울 나들이를 중단하게 되었다.서울사람들이 내 집으로 나들이를 오기 시작 한거다.아버지는 시골에 3만평 가까이 터를 잡고 체험시설을 만들고 서울 사람들을 유치하기 시작 했다.외국인을 처음 예약 받아 농촌 체험을 시작했을때는 정말 헤프닝도 많았다.그리고 국내의 가족 .회사.학교에서 사람들이 몰려 오기 시작했는데 인원에 관계 없이 계절별 체험을 시켜 주고 저녁엔 캠프화이어로 숙박을 하는 손님을 받았다.몰려오는 손님들 덕분에 티비에도 나가고 외교통상부 초청도 받아 서울 구경을 제대로 했다.4년의 시간이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고 시골 생활 7년여에 내 사업장 피아노 학원을 차렸다. 전공이 성악이었던 나는 잘치는 실력은 안 되지만 이론을 가르치고 일주일에 한번 리코더 연주회도 가지는 3박자 완성 시스템(피아노,리코더,이론 실력향상)을 지향하는 열심 학원으로 자리 매김을 하다가 내가 살고 있던 숲을 벗어나 여주 읍으로 이사를 나가면서 학교에 상담 교사가 되었다.지금 생각 해 보면 나는 운도 좋고 기회도 많았다.그리고 마지막 으로 제일 내가 오래 했던 직업은 구몬교사였다. 11년차 구몬교사를 마치고 이제 내가 꿈꿔온 글을 쓰고 있다.

다시 시골여성으로 무엇을 하고 살것인지 20년전 고민으로 다시 돌아 간 것이다.물론 나는 엄마,딸,아내라는 지위가 있고충분히 즐거운 일들로 하루가 채워져 있다.하지만 내가 하루에도 몇번씩 나에게 묻는 질문은 아.. 이걸 글로 쓰면 어떨까

시가 될까, 아님 에세이로..?,드라마 소재같은데...나의 끊임없는 번뇌에 아들은 결심을 했나보다엄마, 하고 싶은거 하세요

그게 글쓰기면 노트북 한대 사자~ 노트북..?

교사일이 계속 할수는 있지만, 언제까지 할까는 나의 선택이란 사실을 잠간 잊고 있었다.난 결정을 해야 했다.그리고 그만 두었다.20년을 여주에 살면서 지속적으로 이루고 싶다고 생각한 일을 처음 하게 된것이다.

이렇게 다시 출발 선에 섰다.